A miserable failure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어느새 또 시간이 흘러 흘러 2024년 새해가 되었다. 또 한살이 먹었는데, 난 어릴때 내가 이 나이쯤 되면 노벨상 하나쯤 탈거라고 생각했다 ㅎ… 현실은 노벨상이 아니라 졸업을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요즘 도통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여러 생각이 들곤 해서, 이 새벽에(글을 쓰는 지금은 1월 1일 새벽 3시) 내 현재 상황에 대한 일기를 좀 써보려고 한다. 이제 벌써 졸업을 준비할 때가 되니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 보고 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그것들을 이뤄냈는지 속시원히 말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 시점에서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크고, 앞으로는 좀 더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을 이뤄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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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난 학부때 계산화학 연구실에서 분자 동역학 시뮬레이션을 배웠다. 배웠다기엔 뭐 이제와 제대로 아는것도, 남은것도 없으니 민망하긴 하지만 여전히 그 풍월은 남아서 나의 연구 철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리/화학의 시뮬레이션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주어진 초기(경계)조건과 운동방정식이 있고, 수치해석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나는 당시에 이런 방식의 시뮬레이션이 상당히 비직관적이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직관과 계산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히 예시를 들어보자면 우리는(사람들은) 작은 공을 손에서 떨어뜨렸을때 “대략” 어느 시간 뒤에 땅에 도달할지 직관적으로 예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계산하고자 한다면 아주 간단한 형태의 방정식이지만 어쨌든 미분방정식인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풀어서 초기조건을 대입하면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의 계산이야 컴퓨터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양자계산/분자동역학과 같은 매우 복잡한 형태의 미분방정식은 인간의 직관으로 근사해를 얻는 시간과 비교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방금 전 예시보다 살짝만 더 복잡한 예시를 들자면, 이원자 분자의 해리 에너지(Bond dissociation energy)를 생각해 보자.

이원자 분자 H-F와, H-Cl이 있을때 어떤 분자의 해리 에너지가 더 높을까? 이건 화학을 전공한 학생이라면 아마 1초만에 H-F의 해리 에너지가 높다는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왜? 인데(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매우 흥미롭다…), 그 사람들이 머리속으로 이원자 분자의 에너지 상태함수를 적분하여 계산했을까? 당연히 절대 아닐 것이다. 극성, 원자의 크기, 원자번호, 최외곽전자의 수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직관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이며, 컴퓨터를 이용한 양자계산에 비해 매우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난 이 인간 뇌를 이용한 계산이 상당히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고, 학부 졸업논문으로 여러 미분방정식(이원자 분자의 에너지 상태함수 /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측지선 방정식)을 인공신경망으로 근사하는 연구를 제안하고 수행하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대학원에서 뇌과학을 연구해야 겠다고 다짐한 것이 짧고 간단한 학부 시절의 나의 요약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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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진학 전, 학부 시절과 졸업 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나는 프로그래밍과 신경망 설계, 수치해석 등에 꽤나 익숙했다. 그 당시의 나는 컴퓨터를 이용해 실세계 문제를 해석하고 푸는데 있어 정말 “엄청나게” 훈련되었고, 이 시절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지옥의 정신과 시간의 방에 처박혀 공부했다고 말하곤 한다 ㅋㅋ… OpenMP/MPI/CUDA 등 Low-level 프로그래밍부터 데이터 분석, 수치해석, 소프트웨어 개발 등 High-level 프로그래밍까지 매우 넓은 영역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학부 말년엔 간단한 수준의 GPU 기반의 과학계산 프로그래밍 언어와 인공신경망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모든게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지만 다 내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미분방정식을 풀지 않는, 뇌와 같은 계산 원리”을 연구하기 위해 준비해온 나름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고, 가야 할 곳을 앎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그곳을 잘 알지 못했다. 요컨대 나는 내가 “미분방정식을 풀지 않는 뇌”를 연구하고 싶다는걸 알았지만, 실제 뇌 연구가 어떤식으로 이뤄지는지는 잘 몰랐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선택을 후회하는 것이야 무의미한 일이고, 뭐든 선택한 일을 잘 하는 것이 맞다. 그렇기에 나에게 후회란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고, 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왔으면 여기를 꿈꿨어야 했는데, 난 그러진 않았던거 같고, 그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난 지난 내 꿈을 버리고, 지금의 일을 잘 했어야만 했다. 이건 결정에 대한 후회라기 보다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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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꿈꿨던 일들은 현재 Neuromorphic computing / NPU 등의 이름으로 연구되고 있는것 같다. 이게 참 아쉬운게, 당시엔 NPU라는 개념이 없었어서 내가 좋아하던 GPU 컴퓨팅을 계속 밀고 나가서 현재 NPU 설계 및 NPU 컴퓨팅 연구로 잘(?) 옮겨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 든다. 물론 이 결정에 대한 후회 조차도, 사실 결과론적인 후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 아냐, 뭐든 후회하지 말자…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후회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자. 잘 알고 있는대로 다 결과론적인 얘기,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뇌의 computational principle을 잘 연구했고, 어릴적(10살쯤) 꿈대로 지금쯤 노벨상을 하나 받았더라면 별로 후회가 들지 않았을거 같기도 하고. 물론 그 와중에도 좀 더 modeling/simulation 쪽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냐 이것도 뭐 누가 칼들고 그런거 하지 말라고 협박 한것도 아닌데, 후회해봐야 뭐든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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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후회하지 말자고 쓰자마자 02번과 03번 문단 사이에서 한 20분 쯤 큰 후회와 함께 약간의 구직활동을 해 보았다. 역시 NPU 설계 등은 어떤 각도에서 봐도 유망하고, 돈도 많이 벌고, 연구도 재밌는 분야인거 같다 ㅋㅋㅋ 그러고는 인생이 조금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장을 오랜 시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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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는 속시원히 실컷 이야기했고, 현재의 나로 돌아와 보면 나는 지금 있는 분야에서 정말 아무것도 이룬게 없다. 위에서 말했듯 노벨상은 커녕 졸업을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이게 무슨 근거없는 자괴감(근자감…?)이 아니라 실제로 근거가 있는 자괴감이다. 몇번이나 이야기 한 대로, 만약 내가 지금 내 분야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면 과거에 대한 후회를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결과론적인 후회를 막는 법이자, 내가 지향하는 삶에서의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잘하는게 하나도 없어서 내가 지금 꿔다놓은 보릿자루인 신세는 아니겠지만, 내가 지금 잘하는 것들도 대부분 대학원에서 완전히 새롭게 배운게 아니라 그냥 Generalist로서 잘하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일반론적인 시선에서 계산/프로그래밍/해석 등에 잘 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그냥 학부 시절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요컨대 다른 연구 분야에 종사했어도 똑같이 그 학부시절의 연장선에서 잘했을만한 일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대학원에서 배운것들은… 음… 내가 뇌과학을 특출나게 잘하나? 뇌영상 데이터 분석을 특출나게 잘하나? 부끄럽게도 그렇다고 말할 근거가 좀 부족한거 같다. 당연하지만 이것도 결과론적인 얘기. 좀 더 성취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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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별로 망설이지 않는다. 연말 내내 난 새해엔 NPU 설계/Neuromorphic computing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고, 이미 공부를 시작했다. 겁은 나지 않는다. 난 사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크게 고민하진 않고, 대부분 내가 잘하는 일을 금방 좋아하게 된다. 지금 일에 대한 아쉬움도 내가 지금 내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커서 그럴것이고…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앞으로 1년간 무슨 일이 있을까, 또 어떤 고생을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절대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이제 연구자로서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