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iserable failure

멘사를 나오고

지난 1년간 몸담았던 멘사코리아를 탈퇴하였다. 회원 자격이 없어지는것은 아니니 탈퇴라는 말은 좀 이상한거 같기도 하고… 정회원 자격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말하는게 정확하겠다. 정회원 회비가 아까운 것은 아니었는데(오히려 멘사는 회비를 지금보다 최소 두배는 올려야 되는 상황이다), 정확히는 멘사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들을 많이 얻어갔기 때문이며, 멘사에 들어오고 싶었던 목적을 충분히 다 이룬것 같기 때문이다.

멘사에 들어와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써보자면, 나는 뇌과학도로서 늘 인간의 지능에 관심이 있었고, 내가 하는 연구들은 대개 인간의 고등 인지기능을 정량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뇌 연구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지능”이란 단어를 실제로 많이 쓰진 않지만, 나는 넓게 보아 뇌인지과학은 지능 시스템과 지능에 대한 학문이라 말하고 싶다. 여기까지는 별반 특별한 얘기는 아닌데, 당시에 나는 지능 시스템과 지능의 핵심적인 요소가 당시 내가 연구중이던 기억의 재조합에 대한 인지기능이라 생각하였고, 실험 참가자들의 “지능 지수”를 측정하고 싶었었다. 지능 지수를 측정한다는 말이 약간은 민감하게 들릴 것 같겠지만, 인지 기능을 정량화 한다고 표현하면 좀 더 괜찮은(?)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연구의 많은 시간을 이 인지기능의 정량화, 측정법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하였는데, 어느 날 대단히 이상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가 멘사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의 시작점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웃긴거 같기도 한데, 어차피 내 블로그 글은 누가 보지도 않으니 솔직하게 써 보겠다. 나는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고자 하는 연구자가 만약 지능이 너무 떨어지면 신뢰성 있는 측정법을 만들 수 있는걸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예를 들어 우리는 머그잔의 높이를 30cm 자를 이용해 충분히 정밀하게 잴 수 있겠지만, 만약 산의 높이를 30cm 자로 측정한다면 거의 제대로 측정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요컨대 측정 장치의 정밀도와 신뢰도가 현저히 낮은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만약 나의 지능이 너무 낮다면(…) 내가 과연 인간의 뇌와 고등인지기능, 즉 지능 시스템과 지능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 할 수 있을까? 그런 지능을 정량화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있었고, 그게 내가 멘사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그때는 꽤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웃긴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멘사가 정말로 고지능자들이 모인 모임이라면 그 안에서 고지능자들을 관찰하며 지능 시스템을 연구함에 있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었다.

테스트 결과는 사실 잘 얘기하고 다니진 않는데, 그냥 블로그에서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 봤다. 솔직히 문제는 쉬워서 아주 빠르게 풀고 반쯤은 누워서 잤을 정도였다. 지능의 다양한 요소를 측정하는 웩슬러 지능검사였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도형/논리추론(FRT)을 사용하는 멘사테스트에서 나는 측정 가능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IQ 156이상, SD24). 아마 작업 기억 등의 요소가 추가되었으면 내 점수가 그렇게 잘 나오진 않았을거 같은데, 이는 조만간 웩슬러 지능검사를 받아서 실제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무튼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멘사 회원들과 교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왔다. 멘사코리아에서 나는 다양한 시그와, 위원회 활동을 했었는데, 시그는 그냥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 끼리 모인 동아리지만, 출판위원회 활동은 멘사코리아의 실질적인 업무이므로 출판위원으로서의 활동은 멘사코리아에 실제로 유의미하게 기여 할 수 있었던 좋은 활동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멘사에서의 활동이 나에게 지능 시스템과 지능을 연구함에 있어 어떤 통찰을 주었는가에 대해 답해 보자면, 나는 절반 정도의 성과를 얻었다고 말하고 싶다. 전반적으로 고지능자들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절반의 답을 준것 같고, 또 반쯤은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때 나는 인간의 고등인지기능이 어디선가 한 축으로 잘 정의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수 많은 심리학자들이 수 십년간 고민해 만든 지능검사 마저도 그 한 축이 아닐수도, 혹은 정말로 독립적인 새로운 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래에도 말하겠지만, 이건 내가 절대로 멘사의 취지나 신뢰성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멘사 테스트가 아무리 대중들에게 그 신뢰성에 대해 의심을 받는다고 해도, 멘사는 전문 심리학자를 고문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제단체이며, 웩슬러 지능검사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은 검증된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대단히 복잡한 지능 시스템을 가장 정확히 정량화 할 수 있는게 현재 고안된 지능검사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난 수 십년간 지능을 연구해 온 수 많은 인지심리학자들이 이뤄온 학문적 성과이고, 그들이 해야 했던 일이고, 당연히 매우 잘 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걸 신뢰하지 못하는 일은 선대 과학자들을 너무 무시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지능을 측정한다는 것이 다소 민감한 문제일 수 있으나, 여전히 학문적으로 우리가 해야하고 알아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 한다. 과학자들이 핵분열이나 유전학을 “민감하지 않은” 문제여서 연구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 것 처럼. 그렇게 만들어진 지능검사는 명백하게 현 시점에서 지능과 지능 시스템을 정량화 할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측정치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부분적인 답을 준 것 같다. 물론 계속 말하지만 이는 다른 멘사 회원들이 절대 똑똑하지 않다거나, 멘사 테스트의 신빙성을 의심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보편적으로 매우 똑똑했고, 전형적인 고지능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가 아주 아주 많았다.

다만 여전히 인간이란 지능 시스템은 다양하며, 복잡도가 높다. 그러한 복잡한 지능 시스템을 규정하는 것이 지능 지수 단 하나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며, 그 복잡함의 바다에서 재미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위한 나의 여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것 같다.


이것은 여담인데, 나는 멘사 테스트를 보러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은 지능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지능 검사를 보러가는 사람 그 자체라고… 누구든 자기의 본질적인 능력이 시험받는 일은 겁이 나고 무서울 것인데, 그게 무슨 멀리뛰기 능력도 아니고 나의 지능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마주하기 위해 테스트를 보러 간다는것 자체가 조금 용기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에게 나 지금 멘사 테스트를 받으러 가고 있다고 말하며 문득 든 이 생각을 이야기 하자 그 친구가 장난스레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지능 검사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용기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능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남에게 말하는 사람이 더 용기있는거 같은걸…”

음, 맞는 말이다. 떨어졌으면 무슨 놀림을 당했을지 ㅋ